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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0-16 22:04
화가 렘브란트
 글쓴이 : 김서연 (39.♡.29.170)
조회 : 1,490   추천 : 0  
렘브란트는 1606년 7월 15일 조이트홀라드주 레이덴에서 출생하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함께 17세기 유럽 회화사상 최대의 화가로,
제분업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4세 때 레이덴대학교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였기 때문에
레이덴의 화가인 야콥 반 스바넨부르크에게 배우고,
이어 암스테르담에 나와 P.라스트만의 문하에 들어갔습니다.

1624년 레이덴으로 돌아와 이듬해부터 독립하여 아틀리에를 열었으며,
1632년까지 완전한 독학으로 친척, 이웃노인, 성서에서
소재를 얻어 꾸준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의 노력이 열매를 맺어 1632년 암스테르담 의사조합으로부터 위촉받은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의 호평을 계기로 암스테르담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초기부터 렘브란트의 야심은 역사화가가 되는 것이었으나
개신교 공화국이었던 네덜란드에는 종교나 역사, 신화 주제의 대작을
주문할 교회나 궁정이 없었습니다.

미술품의 주요 수요자는 네덜란드의 시민,
즉 상인을 중심으로 한 중산계급이었습니다.
활동 초기의 렘브란트는 이러한 고객의 초상화가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렘브란트에게 처음으로 초상화를 주문한 니콜라스 루츠도
 러시아와 모피 무역을 하던 사업가였습니다.

1631년에 그린 [니콜라스 루츠의 초상]에서
모델의 직업과 부를 상징하는 모피 의상, 편지를 들고 몸을 살짝 돌린 기민해 보이는 자세,
신중하고 능동적인 인물이라는 인상을 주는 표정으로
화가는, 그때까지 그려지던 왕이나 귀족의 위세 초상과
완전히 다른 효과를 만들어 냅니다.

렘브란트는 새로운 계급 즉 부와 겸양을 함께 갖춘
프로테스탄트 부르주아 초상의 유형을 성공적으로 창조해 낸 것입니다.
이 작품은 후에 J.P.모건이 구입하여
‘영웅으로 묘사된 사업가’의 이미지가 동업의 후예에게 가진 호소력을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마르텐 솔만스와 오프옌 코피트의 초상은
렘브란트가 그린 개인 초상화 중 가장 큰 작품으로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에 걸게 되어 있던 부부 초상화인데,
다른 중산층 부부 초상화와 달리 서있는 전신이 실물크기로 그려져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서있는 전신 초상화는
왕과 최고위층의 대신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기 때문에,
이 그림의 크기와 모델의 자세로 이 상인 부부의 막대한 부와 명성,
자부심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보이듯 인물의 사실적인 묘사, 음영의 뚜렷한 대조,
엄청나게 큰 솔만스의 구두 장식을 비롯해 다양한 옷감으로 이루어진 의상의 완벽한 재현은
당시에 렘브란트를 가장 주목 받는 초상화가로 만든 요인이었습니다.


최고의 초상화가로서 렘브란트의 입지를 다지게 한 작품은
그가 처음으로 그린 그룹 초상화 [니콜라스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입니다.
직업 조합이나 자치 단체에서 주문했던 그룹 초상화는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의 정수를 드러내는 장르였는데요.
그룹 초상화를 주문 받는 화가는 군주제에서의 궁정화가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암스테르담 외과 의사 조합이 주문한 조합원의 그룹 초상화인 이 작품에서
렘브란트는 비슷한 그림을 그렸던 당시의 화가들처럼
모델을 화면에 나란히 배치하지 않았습니다.

모델은 모두 그림의 왼쪽에 모여 있고
화면의 오른쪽은 해부대에 눕혀진 시신과
강의 중인 툴프 박사에게 할애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비대칭적 구도, 다양한 표정과 각도의 인물의 얼굴이 만드는
다이나믹한 구성은 관람자를 긴장감이 감도는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게 합니다.

광원이 분명치 않은, 그림의 내부에서 스며 나오는 듯한
렘브란트 특유의 빛과 어둠의 대조도 원숙한 경지에 접어들어
깊숙한 공간감과 구성의 효과를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렘브란트는 그룹 초상화에 역동적인 구성과 이야기를 도입하는 혁신을 통해,
오늘날의 졸업사진처럼 인물의 의미 없이 배치했던
당대의 그룹 초상화 전부를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렘브란트에 익숙한 이유 중 하나는
‘그려진 자서전’이라고 할 정도로 수가 많은 그의 자화상 때문입니다.

초기에 그는 표정 연습과 역할 연기적 성격의 자화상,
판매를 위한 트로니 성격의 자화상들을 그리다가
말년에는 오로지 화가로서의 자신을 탐색하듯 응시하는 자화상만을 그렸습니다.

1640년에 그린 자화상은 성공한 30대 화가의 지위와 야심을 보여줍니다.
구도에서 라파엘로의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와
티치아노의 [루도비코 아리오스토]의 영향을 받은 이 작품은
렘브란트가 라파엘로, 티치아노뿐 아니라 그들의 모델과도 경쟁하려 했음을 보여줍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전형적인 궁중 대신 카스틸리오네와,
같은 시대의 시인인 아리오스토를 참조함으로써
화가는 자신이 초상화를 주문한 저명인사와 사회적 신분이 동일하고,
손의 예술로만 여겨져 왔던 그림이 정신적 예술인 시와 동등하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부와 명예를 누렸던 렘브란트는 규모 없는 생활로 1656년에 파산에 이릅니다.
집과 작품, 수집품들을 처분해야 했고,
자기 그림을 맘대로 팔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던 말년의 십여 년 동안
렘브란트는 정면을 향하고 있는 자화상을 집중적으로 그렸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려진 작품 중의 하나인 1659년의 자화상에서는
아무런 가장 없이, 얼굴과 눈빛 만으로 위엄을 전달하는 화가의 모습이
화면 밖으로 살아 나올 듯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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